상을 여의어 적멸함
상을 여의어 적멸함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불교의 세 가지 아상, 즉 증생상, 인상, 수자상은 불교에서 중요한 개념 중 하나입니다. 각각은 인간이나 존재들에 대한 서로 다른 관점을 나타냅니다. 중생상은 이는 모든 존재가 고통과 괴로움을 겪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불교에서는 이것이 모든 존재에게 공통적인 것으로 여겨집니다. 모든 존재들은 탄생, 노환, 질병, 늙음, 죽음과 같은 고통을 경험하며, 이것이 삶의 본질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인성은 모든 인간이 타고난 본성이 있으며, 이는 어떤 정해진 본실이나 자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존재가 동등한 잠재력을 지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간이 타고난 본성을 깨우치고 이를 발휘한다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 불교의 중요한 믿음 중 하나입니다. 수자상은 잘못된 생각과 행동에 의해 인간이 고통을 겪게 된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이는 자아, 욕망, 무지와 같은 것들이 우리를 고통 속으로 끌어들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수자는 잘못된 생각과 행동을 바로잡고 올바른 생각과 행동을 통해 고통을 끝내는 것을 뜻합니다. 이러한 세 가지 이상은 불교에서 삶의 본질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그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지혜를 얻기 위해 사용됩니다. 깨달은 자는 아상, 중생상, 인상, 수자상을 여윈 사람이여 일체의 상을 여의면 그는 곳 부처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경을 일찍이 들은 바 없습니다
(본문발췌)
수보리는 20년을매일 부처님 곁에 머물며 부처님이 설한 모든 법문을 들은 제자 중 한 명입니다. 하지만 수보리는 이와 같은 경을 일찍이 들은 바가 없다고 고백합니다. 20년간 매일같이 부처님의 곁을 지켜온 수보리는 이제야 경을 처음 들었다고 할까요? 모든 시비분별을 끊고 아집을 이겨내고 번뇌의 끈을 놓았다고 할지라도 또 하나의 상에 사로잡혀 버리면 또다시 상에 끄달리고 마는 게 중생입니다. 수보리는 상에 집착하는 자신을 돌아보고 이제야 비로소 모든 상을 여의었을 때 부처님의 말씀을 깨닫게 되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아상이 곧 상이 아니며,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곧 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일체 상을 여의면 곧 그 이름이 부처이기 때문입니다.
(본문발췌)
번뇌가 번뇌인줄 아는 것
번뇌가 번뇌인줄 아는 것은 흔히 번뇌를 여의었다라고 말합니다. 번뇌가 있고, 번뇌가 아닌 보리심이 있어 번뇌를 버리고 보리심을 갖는다는 의미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일체의 상이 없다는 부처님의 말씀에 따르면 번뇌가 번뇌인 줄 알면 다만 그것이 보리입니다. 번뇌는 다만 자기 망상임을 아는 것은 꿈에서 깨는 것과 같고 헛된 꿈이기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바로 보리심입니다. 번뇌를 번뇌인줄 아는 것 즉 번뇌가 보리입니다. 일상생활을 살아가면서 순간순간 일어나는 상을 알아차리는 것을 번뇌를 여의는 길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 만일 다시 어떤 사람이 이 경을 얻어 듣고 놀라지 않고 겁내고 두려워 하지 않는다면 이 사람은 심히 회유한 사람인 줄 알아야 한다. 여래가 제일바라밀을 말함이 제일바라밀이 아니라 그 이름이 제일바라밀이기 때문이다.
(본문발췌)
제일바라밀이라는 말은 주처님들이 삼보중 하나로 주어진 우리에게 바라는 최상의 행복을 의미합니다. 불교에서는 부처님이 모든 존재에게 고통에서 벗어나고 진정한 행복을 얻기를 바라신다고 믿습니다. 이는 올바른 인식, 올바른 사고, 올바른 행동을 통해 이루어지는데, 이는 곧 심신의 평화와 고통의 종료, 진정한 행복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행복을 말하는 것이 행복이 아니라 행복은 이름일 뿐이지 행복이라는 것이 있어 행복을 집착할 일이 아님을 아는 것이 보리입니다. 행복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지 찾아다니고, 집착할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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