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유정법
무유정법은 모든 것이 변화하고 무상태에 있음을 강조합니다. 즉, 모든 것은 고정된 상태가 아니라 영원한 변화와 흐름 속에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불교에서 중요한 깨달음의 하나로 여겨지며, 세상의 변화와 고통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데 도움이 됩니다. 무유정법은 또한 명상의 중요한 개념으로 사용되며, 명상을 통해 마음을 고요하게 하고 모든 것이 변화하는 과정을 직접 체험함으로써 깨달음을 이룰 수 있다고 믿어집니다. 따라서 무유정법은 불교에서 스님들이 가르치는 중요한 수행 방법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법이 정해졌다 해서 그것이 언제 어디에나 통용되는 절대적 진리가 될수 없습니다.
(본문발췌)
부처님의 고정된 실체 없이 인연애 따라 맞는 법을 설해 주십니다. 서울가는 길을 물어본다면 인천에서는 동쪽으로 부산에서는 북쪽으로 강원도에서는 서쪽으로 향하는 것처럼 각자의 맞는 길을 설법해 주십니다. 그런 이치를 법성게에서는 모든 존재는 순수하고 완벽한 본성을 갖고 있으며, 이 본성은 어떠한 변화나 변형도 받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이를 깨닫고 이를 따르는 것이 지혜와 깨달음의 시작이며, 이를 통해 모든 것을 절대적인 법은 어디에도 없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럼 나라는 존재는 어떠 할까요?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의 삶 속에서 나는 누구일까요? 나는 부모님을 만나면 자식이 되고, 자식을 만나면 부모가 되고 회사에서는 직장인이 되고, 식당에 가면 손님이 됩니다. 나는 어떠한 고정된 역할을 하고 있지 않고, 그때의 인연에 따라 다양한 모습의 내가 있습니다. 나는 누구일까요? 이 질문은 근본적인 불교수행의 질문입니다. 나로 생각하는 내가 누구인지 나는 어떠한 상을 가지고 나를 보고 있나요?
무위법
무위법은 모든 것이 무분별하게 현상화되는 것을 의미하며, 어떠한 것도 주체적인 의지나 노력에 의해 창조되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이는 모든 것이 조건적으로 발생하고, 인과적인 요인에 의해 변화한다는 불교의 관점을 반영합니다. 따라서 무위법은 불교에서 중요한 깨달음의 하나로 여겨지며, 모든 존재의 본성은 어떠한 주체적인 노력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고, 본래 그대로 있는 것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무위법을 깨닫는다는 것은 불교에서 깨달음을 이루는 과정 중 하나로 여겨집니다. 무의법을 나에 비유하면 나라는 상이 없습니다. 그때그때의 인연에 따른 역할을 할 뿐입니다. 나는 부모도, 자식도 사장도, 손님도, 종업원도, 택시기사도 아닌 상황상의 역할만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사장인 사람은 어디를 가도 사장 대우를 받기 원하며 손님일 때는 종업원을 이해하지 못하며, 자식일 때는 부모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 역할이 나라는 상에 빠져서 심취되어 있을 뿐입니다.

물이 그릇에 따라 모양을 바꾸듯 인연에 따라 그때그때 바뀌어야 문제가 없습니다. 인연에 따라 사는 삶이 집착이 없는 삶이고, 그것이 바로 무위의 삶입니다.
(본문발췌)
무위의 삶은 쉽지 않습니다. 모든 일이 다 그렇습니다. 나의 상을 수없이 알아차려도 다시 상을 짖는게 법부 중생입니다. 하지만 수없이 알아치림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순간 평온해 지는 나를 발견 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깨달음은 자전거 타기와 같아서 한번 달리기를 성공해도 다시 넘어 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번 달려본 사람과 한번도 타지 않은 사람은 큰 차이를 보이기 마련입니다. 굳건한 믿음이 생기면 견딜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4부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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