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 나쁜 사람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의 정의할 때 정해진 규칙이 있는 걸까요? 아마 대부분의 사람이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쉽게 구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떠한 기준으로 구별을 할 때, 이것을 상을 짓는 것입니다. 운전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앞에서 어느 한 차가 깜빡이 없이 끼어들어서 사고가 날 뻔했습니다. 끼어든 사람은 사과의 제스처 없이 제 갈길로 가버립니다. 갑자기 발생한 상황에서 가슴이 떨리고 입에서는 욕이 나오고 맙니다. 운전 똑바로 하지 못해 내 마음은 이미 미움이 올라와 정체 모를 운전자를 향해 분노의 마음을 갖습니다. 분명 그의 행동은 무례하고 잘못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을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자식이 사고가 났다는 연락을 받고 급하게 병원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여러 고비를 넘기고 병원에 도착해서 사고 난 자식을 돌보고, 걱정하는 가족들을 위로합니다. 자식과 가족을 향한 마음으로 가득 찬 그는 좋은 사람입니다. 그렇다는 그는 좋은 사람일까요? 나쁜 사람일까요? 우리는 우리 앞에 닥친 객관적인 사실을 주관적으로 받아들여 나에게 나쁜 영향을 미친다면 나쁜 사람이라 단정 지어 버립니다. 이것이 상입니다.
이렇게 상에 집착하는 이유는 그것이 객관적인 사실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내 눈에 그렇게 보이는 것을 실체라고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본문발췌)
한번 상을 지으면 그 상에 집착하게 되며 그것이 객관적인 진실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것이 진리는 내가 그렇게 느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느끼는 마음과 생각은 나의 자라온 환경의 인연에 따라서 세워진 관념입니다. 다른 환경에서 자란 사람은 다른 관점을 가질 수밖에 없고, 객관적 진실은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되지 않습니다. 내가 진실이라고 생각할 때는 또 상에 집 차했구나 하고 알아차려야 합니다. 진실은 누구에게나 다르게 적용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내가 생각하지 진실이 거짓은 아닙니다. 나에겐 진실이 타인에게 진실이 아닐 수 있고, 타인의 진실이 나에겐 진실로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진실은 말 그대로 진실로 불릴 뿐이지 객관적인 관념이 있지 않습니다.
내가 너를 위해
내가 너를 위해 이렇게 까지 했는데 라는 생각을 해 본적이 있습니다. 법문을 만난 기쁨으로 친구에게 전법을 하기 위해 금강경 책을 선물했습니다. 시간 날 때 읽기만 해라고 가벼운 마음을 전했습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친구는 그 책을 읽지 않고 몇 번을 물어봐도 나빠서 읽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책은 어려울 수 있으니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유튜브의 링크를 보내주고 행복학교 스토리도 전달했습니다. 하지만 그 후 친구로부터 아무런 피드백을 받지 못했습니다. 내가 너를 위해서 이렇게까지 좋은 자료를 보내주고 좋은 인연을 맺어 주려고 하는데.. 서운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차.. 내가 또 상을 짓는구나. 내가 너를 위해 이렇게 까지 한다는 상을 짓고 있음을 순간 알아차렸습니다.
부처님 이 몸은 무상한 것입니다. 오늘 죽으나 내일 죽으나 죽기 마련입니다. 불법을 위해 쓰이고 죽는다면 아무 여한이 없습니다.
(본문발췌)
부처님의 십대제자 인 부르나의 인욕을 성취한 내용입니다. 수로나국의 난폭한 사람에게 설법을 가기로 부처님의 청하였고, 부처님은 수로나국의 난폭한 사람들은 설법을 전하러 온 그대를 죽일 수도 있다고 일러 주었습니다. 하지만 부르나는 어떠한 상도 머무름도 없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전법의 기쁨은 누구를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기쁘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결국은 내가 하고 싶고 내가 좋아 보이는 일을 하면서 상대를 위해서 한다는 상에 집착하고 있습니다. 내가 법문을 만나 기쁘고, 친구에게 기쁨을 나눠 주고 싶은 건 내 생각일 뿐입니다. 무조건 나에게 좋은 것이 친구에게도 좋은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내가 좋은 것이라 생각이 들면 권해보고 친구가 하지 않는다면 그만입니다. 그 친구도 꼭 같이 해야 한다는 생각도 상에 집착하는 것입니다. 나는 다만 할 뿐, 결과는 바라지 않은 것이 무주상 보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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