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아
무아는 불교에서 중요한 개념으로, 일반적으로 자아가 없음이나 내가 없음으로 알려져 왔습니다. 이는 모든 존재가 영원한, 불변하는 자아나 실체를 가지고 있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불교에서는 모든 존재가 무한한 변화와 연속적인 의존 관계 속에 있으며, 따라서 고정된, 영원한 자아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르칩니다. 이러한 개념은 "아타"라는 개념과 대비됩니다. 아타는 인도의 브라만교와 유사한 개념으로, 영원한, 불변하는 자아를 가지고 있다고 믿는 것을 의미합니다. 반면에, 무아는 모든 존재가 과거, 현재, 미래를 통틀어서 영원한 자아나 실체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무아의 개념은 불교에서 열심히 수행하는 깊은 수행자들에게 깨달음의 경지를 이끌어주는 중요한 개념 중 하나입니다. 무아를 깨닫는 것은 모든 존재가 서로 의존하고 상호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고, 욕망과 이기심을 떨쳐내고 세계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얻는 데 도움이 됩니다. 가장 큰 예시로 원효대사의 해골바가지 이야기가 있습니다. 당나라로 유학을 가던 원효대사가 동굴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습니다. 목이 말라서 물을 찾다가 손에 잡히는 그릇이 있어 그 그릇에 담긴 물을 마셨더니 너무나 시원했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 그것이 해골바가지에 담긴 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갑자기 구역질이 났습니다. 그것이 해골바가지인걸 모를 적에는 단비같이 시원한 물이 해골바가지 속에 담긴 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구역질이 났습니다. 해골바가지는 변한 것이 없지만 달라진 것은 원효대사의 생각이었습니다.
무엇에도 정해진 법이 없음을 깨치면 내 안에 들끓던 짜증도 화도 미움도 사라집니다. 화나고 짜증 나고 미워하는 마음은 모두 내가 옳다는 생각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본문발췌)
모두 내 생각이 만들어낸 상이다라는 것을 알면 미움과 원망하는 마음이 사라지고 있는 그대로 세상을 보게 됩니다. 옳고 그름은 내가 만든 상이지 본래부터 옳고 그름이 없습니다. 해골바가지 안의 물이 몰랐을 때는 단비 같은 시원한 물이 되지만 알고 나서는 구역질을 유발하는 것처럼 분별은 마음이 일으키지 물질에 있지 않습니다. 물질은 다만 그것일 뿐입니다. 바뀌지 않은 속성이지만 내 상황의 인연에 따라 시원한 물이 될 수도 있고, 구역질 나는 물이 될 수도 있습니다.
빚 갚을 좋은 기회
빚 갚을 좋은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금강경을 수지독송하면 한량없는 복을 받고, 열반 해탈에도 들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 공덕을 기대하며 금강경을 외우고, 반복해서 읽습니다. 하지만 그 공덕이 내 삶에 바로 발현되지 않습니다. 때론 사람들에게 핍박을 당할 때도 있고, 사기, 배신, 손해를 볼 때가 더 많습니다. 원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거나, 주변 가족들이 병이 들기도 합니다. 이런 의문에 부처님은 말씀하십니다.
본래 그 사람은 과거 전생으로부터 지어온 인연으로 지옥에 떨어져 고통을 받아야 마땅한데, 금강경을 수지독송한 공덕으로 비웃음과 멸시를 당하는 정도로 선세의 죄업이 소멸되었다. 또한 그는 결국 이런 장애를 이겨내고 최고의 깨달음을 얻게 된다.
(본문발췌)
중생은 눈앞에 벌어질 일에만 집중을 하게 됩니다. 작은 파도의 물결에 집중하지 큰 바다가 뒤에 있다는 것과 모르는 이치입니다. 모든 일은 인과관계가 있습니다. 당장 눈앞에 벌어진 불행 혹은 행운으로 나의 마음은 좋았다가 괴로웠다를 반복합니다. 맛있는 음식이 이쁜 그릇에 담겨 있습니다. 쥐는 웬 떡이냐고 생각하며 얼른 그 음식을 먹습니다. 그 음식에서 독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추호도 하지 못합니다. 평생 이런 대접을 받아보지 못한 쥐는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드디어 내 인생에서도 이런 날이 오는구나라고 생각하면서 그 음식을 먹어는 순간 그 음식에 독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의 인생도 한 치 앞을 볼 수 없습니다. 쥐와 같이 내 앞에 나타난 행운과 같은 일이 결국은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나 나쁜 결과를 가져올 것이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한걸음 뒤에서 곰곰이 생각을 해 보면 경계할 수는 있습니다. 쥐는 지금까지 쓰레기통을 뒤지면서 먹을 것을 찾았었지 한 번도 이쁜 그릇에 담겨 있는 음식을 먹은 적이 없습니다.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났을까? 어떠한 유혹이지 않을까?라고 한 번이라도 경계의 끈을 놓지 않았다면 독이든 음식을 먹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남이 나를 욕할 때 그게 도리어 복임을 알아야 합니다. 남이 나를 칭찬할 때 그것이 도리어 재앙이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본문발췌)
내 인생에 일어난 일들을 천천히 생각해 보면 모두 그 원인과 결과는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행여, 이번 생에 그 업을 받지 않는다면 다음 생에 혹은 후대의 자손에게도 영향이 있을 수 있습니다.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부모와 함께 생활하면서 그 업을 받게 되고, 부모의 부모, 그 부모의 부모의 업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자신의 과보를 무시하고 욕심에 눈이 멀어 같은 삶을 되풀이합니다. 지은 인연의 과보는 피할 수가 없다. 내가 지은 것은 내가 받는다 라는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의 말씀을 새겨듣고 기꺼이 나의 과보로 받아들여 책임지는 자세를 가지는 것이 불행을 피하는 가장 빠른 지름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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